길을 걷다 돌아보게 되는 사람, 패셔니스타처럼 세련되고 개성 넘치는 옷차림으로 시선을 끄는 사람이 있다. 본질을 알아보기 전에 겉모습에 먼저 시선이 가는 게 아닌가 싶지만, 사실 겉은 어떤 방식으로든 내면을 표현하게 마련이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특정 와인을 기억할 때 우리는 인상적인 레이블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레이블 디자인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개성 있는 레이블은 와인에 얽힌 스토리나 역사, 생산자의 철학을 보여주고 맛과 향을 절묘하게 연상시키기도 한다.

레이블 디자인이 와인 선택의 절대적 요소가 되진 않더라도 참고적 요소가 될 때는 많다. 독특한 레이블을 가진 와인들은 이제 막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이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갈 수 있다. 또 매력적인 첫인상을 갖췄으니 선물하기에도 좋다.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사용한 ‘아트 레이블’부터 스마트폰 앱으로 증강현실을 접할 수 있는 레이블, 온도에 따라 변하거나 독특한 스토리를 담은 레이블까지, 보는 순간 눈을 즐겁게 하고 와인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와인들을 소개한다.

*작품 옷을 입은 ‘아트 레이블’

와인생산자들이 와인 양조 과정을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과정에 비유하는 경우가 있다. 넓은 범위에서는 와인도 예술이라는 것이다. 아티스트의 작품과 와인의 만남은 그런 면에서 매우 자연스럽다. 소장 가치가 높은 미술작품이 있듯 그만큼 가치 있는 와인도 있는 법. 미술 작가의 작품을 레이블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와인으로는 너무도 유명한 샤토 무통 로칠드가 있고,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미술가들의 작품을 레이블로 사용해 한정판 와인으로 출시하는 ‘아트 앤 와인’ 시리즈도 있다. 단순히 유명한 작품과 유명한 와인을 매치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철학이 맞닿아 있는 작가와 와인의 만남이며, 아트 레이블을 통해 작품과 와인을 함께 소장하고 즐길 수 있는 셈이다.

1. 샤토 무통 로칠드 Chateau Mouton Rothschild
→ 1945년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샤토 무통 로칠드의 아트 레이블은 매년 아티스트를 선정하고 그에게 작업을 의뢰해 새롭게 제작하는 협업으로 진행된다. 지금까지 마르크 샤갈(1960), 파블로 피카소(1973), 앤디 워홀(1975), 데이비드 호크니(2014) 등 미술계의 거장들이 샤토 무통 로칠드의 레이블을 작업했고, 2013년 빈티지는 한국 작가 중 최초로 이우환 화백의 작품이 사용됐다.

2. 이기갈, 에르미타주 루즈 ‘아트 레이블’ E.Guigal, Hermitage Rouge ‘Art Label’
→ 프랑스 론 지역의 명성 있는 와이너리 이 기갈과 김창열 화백의 만남.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열 화백은 40년 넘게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아티스트다. 장인정신이 깃든 예술가의 작업은 매해 최상의 포도에서 와인을 빚어내는 와인메이커의 작업과도 비교할 수 있다. 김창열 화백이 지속적으로 물방울을 그리는 작업이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는 과정인 것처럼, 와인메이킹 또한 스스로를 비워나가는 과정이다. 이 와인은 30년 이상의 올드 바인에서 손수확한 포도로만 양조했고, 와이너리에서 맞춤 제작한 오크통에서 3년간 숙성했다.

*생생하게 소통하는 레이블

기술을 이용해 똑똑한 방식으로 소비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와이너리도 있다. ‘Living Wine Labels’라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와인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와인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고 홈페이지에 바로 접속할 수 있으며, 만약 눈앞에 와인이 있다면 레이블을 스캔해서 증강현실(AR)이 적용된 ‘움직이는 레이블’을 통해 생생하게 브랜드의 이야기를 경험할 수 있다.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앱의 설정에서 언어를 선택할 수 있는데, 한국어 자막도 제공된다.

3. 19 크라임스, 레드 블랜드 19 Crimes, Red Blend
→ 17세기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19가지의 범죄 리스트를 정해 강제 이주의 형벌을 내린 역사가 있다. 영국의 아일랜드 통치에 반대해 범죄자로 지목된 이들은 호주에서 개척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호주 남동부에 자리한 19 크라임스의 와인들은 이들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레이블의 인물들은 실제로 이주 형벌을 받은 역사 속 인물들로, 구글플레이나 앱스토어에서 ‘Living Wine Labels’ 앱을 다운받아 레이블을 스캔하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19 크라임스 레드 블렌드의 인물은 아일랜드 출신의 시인 존 보일 오레일리(John Boyle O’Reilly). 그는 아일랜드인을 대변해 영국에 반란을 일으켜 호주 태즈메이니아로 추방됐다. 아일랜드 출신의 밴드 U2의 곡 "Van Diemen’s Land"는 바로 그를 기리는 곡이다.

*레이블의 참신한 변신

레이블이 온도와 환경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면 어떨까. 실제로 이런 흥미로운 와인들이 있다. 적정 온도가 됐을 때 레이블의 그림이 바뀌며 ‘지금 마시기 좋은 상태’임을 시각적으로 알려주거나, 특정한 조건에서 컬러가 변하고 새로운 레이블이 나타나 와이너리에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인상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단순히 어떤 와인인지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 생산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레이블에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색다른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변신하는 레이블은 소비자들에게 와인을 더 쉽고 친근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4. 마르 데 프라데스, 알바리뇨 아틀란티코 Mar de Frades, Albarino Atlantico
→ 스페인의 리아스 바이사스에서 알바리뇨 100%로 생산한 이 와인은 시원한 블루 컬러 보틀에 파도가 일렁이는 풍경을 담고 있다. 신선한 과실향을 만끽할 수 있는 적정온도는 8도에서 10도 사이. 정확한 온도를 맞추기 위해 온도계가 필요하진 않다. 칠링을 해서 그 온도에 도달했을 때 레이블에 작은 보트가 나타나기 때문. 그리고 적정온도에서 벗어나면 다시 보트가 사라진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신기하면서 재미있는 경험이고, 오픈하기 좋은 타이밍도 알 수 있으니 편리하다. 이렇게 재치있는 변신이라면 반가울 수밖에!

5. 핀카 바카라, 하이 Finca Bacara, HI
→ 스페인의 핀카 바카라 와이너리에서 플래그쉽 제품으로 생산한 와인. 이 모던한 스타일의 레이블에도 비밀이 숨어있다. 평소에는 검은색을 띠지만 열을 가하면 그 아래에 감춰진 레이블이 나타나는 이중 레이블로 만들어진 것. 라이터를 포함해 어떤 종류의 불이든 레이블 앞에 가져다 대면 열기에 의한 변화를 볼 수 있다. 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의미로, 해발 900m에 자리한 빈야드에서 온전히 유기농 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하는 핀카 바카라의 철학과도 맞닿아있다. 신비로운 레이블처럼 묵직한 무게감과 매력을 갖춘 와인으로 모나스트렐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레이블

유독 ‘탄생비화’가 재미있는 와인들이 있다. 와인에 얽힌 스토리를 알고 즐기면 더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것. 와인 탄생에 깃든 이야기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와인 레이블이 생산자와 와인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인상적으로 전달해준다. 강렬하게 시선을 끄는 컬러풀한 레이블부터 역동적인 느낌을 선사하는 이미지까지,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을지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와인들이다.

6. 라피스 루나, 레드 블렌드 Lapis Luna Wines, Red Blend
→ 와이너리의 이름인 라피스 루나(Lapis Luna)는 돌과 달을 뜻한다. 그렇다면 지구, 사람, 달이 그려진 독특한 와인 레이블은 무엇을 의미할까? 카베르네 소비뇽, 진판델, 메를로, 산지오베제를 블렌딩한 라피스 루나 레드 블렌드의 레이블은 400여 년 전에 그려진 판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했다. 이는 지구 위에 앉은 한 인물이 푸른 달을 향해 손을 뻗어 올리며 영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뛰어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자연이 주는 지혜를 얻으려 노력하는 와인생산자들의 모습을 상징하며, ‘달이 캘리포니아 와인에 미친 영향’을 뜻한다.

7. 카사 로호, 알렉산더 VS 더 햄 팩토리 Casa Rojo, Alexander VS The Ham Factory
→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의 주인공 돼지를 연상시키는 레이블이다. 사실 이 와인이 생산되는 리베라 델 두에로 지역은 스페인에서 프리미엄 와인산지일 뿐만 아니라 고급 하몽을 생산하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템프라니요, 카베르네 소비뇽, 말벡, 메를로를 블렌딩한 이 와인은 엄청난 크기로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던 ‘알렉산더’라는 전설적인 돼지를 기리는 의미를 담았다. 레이블에 적힌 ‘The Great’ 역시 알렉산더를 향한 찬사다. 돼지의 뒷다리로 하몽을 만드니 레이블 속 알렉산더는 황금의족을 하고 있으며, 돼지들이 먹는 도토리도 함께 그려져 있다.

8. 제라르 베르트랑, 햄튼 워터 로제 Gerard Bertrand, Hampton Water Rose
→ 레이블에 다이빙하는 사람을 표현해, 휴양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와인은 남프랑스 지역의 유명 생산자인 제라르 베르트랑에서 만든 로제 와인이다. 록 밴드 본 조비의 보컬인 존 본 조비(Jon Bon Jovi)의 라이프스타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존 본 조비와 그의 아들은 미국 동부에서 손꼽히는 휴양지인 햄튼에서 소중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햄튼 워터 로제를 탄생시키기 위해 존 본 조비와 아들은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블렌딩 과정에 참여했고, 와인이 출시된 이후 미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레이블에서 전해지는 청량한 느낌대로 신선한 과실향과 미네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와인이다.

@와인명으로 검색해서 각각의 레이블을 찾아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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