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한잔으로 문화를 마신다.

“와인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맛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리적인 거리감과 이질적인 문화의 벽을 단숨에 허물어 버릴 만큼 와인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가 녹아있습니다.”

와인 마니아 신성식씨(44·대전 유성구 전민동·사진)는 지난 85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길에 올라 처음으로 와인과 만났고 지금까지 특별한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유학생활 전에는 포도주와 가깝게 지내지 못했다는 신씨. 우연히 알게된 모 연구원의 집에 초대받고 나서 처음으로 와인이란 것을 마시게 됐다고. 지금은 ‘와인’하면 머릿속에 온갖 향과 맛이 물안개처럼 피어올라 와인을 연상하는 것 만으로도 마취제를 맞은 듯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기 때문에 처음 맛본 와인의 맛을 떠올리지 못하겠다던 신씨는 한참만에 와인의 맛을 ‘우아하다’고 표현했다.

맘이 맞는 유학생들끼리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기분을 낼 때면 으레 비싼 소주 대신 와인을 마시면서 서서히 그 맛에 중독이 됐다는 신씨는 생면부지의 사람조차 와인을 주제로 얘길 나누다 보면 어느 덧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처럼 친근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와인의 매력 1순위로 꼽는다.

“흔히 얘기하듯 술에 취하고 싶다면 소주나 알코올 도수가 높은 독주를 마셔야 겠지요. 와인은 술 자체로서의 매력도 있지만 그보다는 곁들이는 음식이나 함께하는 사람과의 분위기에 영향을 주고 받아요.”

와인의 알코올도수는 대략 12.5도. 맥주보다는 세지만 소주보단 약하다.

와인이 사람들 사이에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때문일까? 신씨는 지난 2003년부터 ‘대전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총무를 맡아 온·오프라인에서 와인 전도사로서 활약하고 있다.

신씨의 임무는 회원들이 조금씩 내는 회비로 평소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고급와인을 구입, 회원들의 오감을 충족시켜 주는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와인을 고르는 순간부터 포도주를 목으로 넘기는 순간까지 가장 큰 전율을 느끼는 것은 신씨 본인이지만 말이다.

신씨는 와인을 고르는 것은 홍시를 고르는 것과 비유된다고 말한다. 소비자 입장에서야 고른 홍시가 가장 맛있는 상태이길 원하지만 판매자 입장에선 판매할 수 있는 기간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덜 숙성된 홍시(와인)를 판매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좋은 술의 경우 1-2년 더 묵였다가 먹는 것이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와인 고르는 법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신씨는 유통상태가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와인 마니아들은 모터진동이 없는 고가의 와인전용 냉장고를 둘 만큼 와인은 보관이 중요하다.

“육안으로 봐서 코르크 밑바닥에서 병목이 넓어지기 시작하는 부분의 공간이 적당해야 해요. 뜨거운 곳에 오래두면 와인이 증발되는 경우가 있죠. 또 코르크가 심하게 빨려들어갔거나 밀려났다면 온도변화를 심하게 겪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밖에 코르크 마개가 마르면 와인을 숨쉬게(?) 한다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므로 장기간 보관시는 병을 눕혀놓아야 한다는 게 신씨의 귀띔이다. 신씨는 와인 100여병을 이런 방식으로 보관하고 있다.

와인을 고르다 보면 때론 뜻하지 않은 횡재를 경험하기도 한다. 소비적기가 다소 지난 와인을 헐값에 구입하는 경우다. 신씨는 4-5년쯤 전 1992년산 아르띠그 아르노(Artigue Arnault), 뽀이약(Pauillac) 와인을 1/3 가격에 다량 구입한 적이 있다. 뽀이약 와인은 10년이상 보관해도 무리가 없지만 92년산은 작황이 좋지 않아 5-8년 정도가 보관적기였고 마침 이 시기에 정상가 3만-5만원의 와인을 만원 미만의 가격에 살 수 있었던 것.

“와인은 살아있습니다. 또 사람들을 즐겁게 해줍니다. 연말연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자리가 많아지는데 올해는 품위있는 와인으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해보는 것도 좋겠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