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포도재배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등에 나타나지만, 포도인지 머루인지
구분이 애매하며, 1700년대 『양주방(釀酒方)』등에는 누룩, 밥, 포도즙으로 술을 빚은 것이 나타난다.
고려 때 충렬왕 11년(1285년), 28년, 34년에 원제가 고려의 왕에게 와인을 계속 보내왔는데,
이 때의 와인은 정통 과실주 양조법으로 담은 것이라고 생각되며, 그 후에도 『동의보감』, 『지봉유설』 등에도
와인을 소개하고 있는데, 주로 중앙아시아에서 유입된 것을 묘사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인조 14년(1636년) 대일통신부사 김세렴의 『해사록(海笑錄)』에 서구식 레드와인을 대마도에서
대마도주와 대좌하면서 마셨다는 기록이 있으며, 1653년 네덜란드 하멜이 일본을 가는 도중 폭풍을 만나
제주도에 난파(하멜표류기)하여 가져왔던 레드와인을 지방관에게 상납했 다고 한다.
이후, 고종 3년(1866년), 5년 독일인 오펠트가 쇄국정책을 뚫고 레드와인을 반입하였는데,
이 때는 와인 뿐 아니라 샴페인 및 양주도 도입하였다.
그 뒤 문호개방 후 본격적으로 상륙하여, 레드와인(赤葡萄酒), ‘사리(瀉哩)’라고 하는 셰리,
‘상백윤(上伯允)’이라는 샴페인은 고종 3년, ‘복이탈(卜爾脫)’이라는 보르도 와인은 고종 13년,
‘사과주(蘋果酒)’인 사이다는 고종 24년, ‘박덕(博德)’이라는 포트는 고종 20년, 그리고 ‘발란덕(撥蘭德)’이라는 브랜디,
‘당주(糖酒)’인 럼, ‘두송자주(杜松子酒)’인 진, ‘유사길(惟斯吉)’이라는 위스키 등도 상륙하게 된다.


이 때부터 서양 여러 나라와 교류를 하면서 와인이 본격적으로 상륙하였으나, 정통 와인보다는
맛이 달고 알코올 농도가 높은 디저트 와인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좋아했다.
그리고 일제시대부터 몇 몇 회사에서 만들었던 포도즙과 알코올을 혼합한 술이나, 각 가정에서 포도를 으깬 다음
설탕과 소주를 부어 만든 술도 서양의 디저트 와인 ‘포트(Port)’를 흉내 낸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와인은 달고 은근히 취하는 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고, 일반 테이블 와인에 대해
맛이 시고 떫다고 거부하는 사람이 많다.


포도의 본격적인 재배는 1906년 뚝섬 원예모범장이 설립되고, 1908년 수원 권업모범장 후의 일이다.
이 때는 주로 미국 종 포도가 도입되었고, 1918년 경북 포항의 미츠와 농장에서 와인을 만들기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와인다운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다. 동양에서도 상당히 늦게 시작한 것이다.
이 때는 정부에서 식량부족을 이유로 곡류로 만든 술보다는 과일로 만든 술을 장려하였기 때문에
대규모 포도단지 조성을 권유하여 대기업이 참여하였다.


맨 처음에 나온 것은 ‘애플와인 파라다이스’로서 1969년부터 나와서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어서 포도로 만든 ‘올림피아’를 생산하였으나 1986년 파라다이스가 수석농산으로 바뀌면서 ‘위하여’로 변경되었다.
그 다음이 1974년에 나온 해태 노블와인 시리즈로서 ‘노블 로제’, ‘노블 클래식’, ‘노블 스페셜’을 출시하였고,
이들은 1975년 국회의사당 해태 상 밑에 이 와인을 매립하여 100년 후에 꺼낼 것을 약속하기도 했다.
우리가 잘 아는 ‘마주앙’은 세 번째 주자로서 1977년 뒤늦게 출발하였지만, 뛰어난 기술과 판촉으로
순식간에 우리나라 과실주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라이벌인 진로에서 ‘샤또 몽블르’를 출시하였고, 이어서 금복주의 ‘두리랑’, ‘엘레지앙’ 대선주조의 ‘그랑주아’,
‘앙코르’ 등이 1980년대에는 우리! 나라 와인의 전성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1980년대는 매년 10-30% 씩 성장하면서 1988년 최고의 성장을 기록하지만, 우리나라는 여름이 덥고
습하며 겨울은 추운 곳으로 7, 8월에 집중 강우나 태풍 등으로 와인용 포도재배에는 조건이 좋지 않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양조기술보다는 포도재배나 육종에 노력하여 우리 풍토에 맞는 품종을 개발했어야 하는데
전부들 양조에 초점을 맞추어 실패한 그 점이 아쉬울 뿐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여건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산 와인이 수입되면서 국산 와인은
설자리를 점점 잃게 되었고, 이제는 겨우 화이트와인만 명맥을 유지하고, 대개는 현지에서 상표를 붙여서
가져오는 O.E.M. 방식으로 나오고 있다.
요즈음은 농민단체에서 와인을 만들기 시작하지만, 의욕에 비해 기술수준이 낮아, 아직도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우리 와인을 외국 와인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우리 국산 와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외국산이 가질 수 없는 독특한 맛과 향을 지닌 와인이라는 점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