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 지역 포도 당도 낮아 설탕 첨가 불가피"

"지나치면 균형미 깨져...최고급 와인엔 금지"

메리 포핀스의 노래 '한 스푼의 설탕'은 커피뿐 아니라 와인에도 적용할수 있다.
그윽한 커피 향에 한 스푼의 설탕이 달콤한 풍미를 더해 주듯,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설탕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다. 한스푼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이 들어간다는게 문제라면 문제.

유럽 등지의 와이너리에선 해마다 와인에 수십만t의 설탕을 첨가하고 있다.
단맛의 디저트용 와인에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와인산업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의 하나로
지난해 12월 유럽연합 내 대부분의 농림부 장관들은 '당분첨가(Chaptalization.와인을 발효시키기전에
알코올 함량을 높이기 위해 설탕을넣는 작업)'를 금하자는 제안에 찬성했다.
이에 프랑스 북부 지역이나 오스트리아 독일 등지의 와이너리 관계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사실상 유럽의 와인업계는 '설탕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추운 기후 때문에 포도의 당도가 낮은 북유럽 지역 와이너리들은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와인에 당분을 첨가해왔다. 법에 근거해 와인 생산자들은 설탕 첨가로 3.5%의 알코올 도수를 올릴수있다.
유럽, 즉 독일가 오스트리아 프랑스 그리고 신세계 와인 생산지역인 미국의 오리건주와 뉴질랜드가 대표적이다.

사실 당분 첨가는 '미세 산소 기술(micro-oxygenation)'이나 '역삼투(reverse osmosis)'처럼
최근에 개발한 와인생산기술이 아니다.
본격적으로 이 기술이 활용되기 시작한 건 19세기 들어서다.
나폴레옹 시절이었던 1801년 내무부 장관을 지낸 장 앙트완 샵탈은 와인에 당분을 첨가하는 기술을
공식 승인하고 장려하기도했다. 고대 로마인들도 와인에 같은 효과를 위해 꿀을 첨가했다고 전해진다.

와인에 당분을 첨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와인 극보수주의자들도 반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일례로 자연주의 와인전문가인 조 드레스너조차 "와인에 당분을 첨가하는 것을 나쁜 행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건 일상적인 와인 제조기술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미국 오리건 주 윌라멧밸리(Willamette Valley) 지역 와이너리 체할렘(Chehalem)의 창업자이자 와인메이커인
해리 피터슨 네드리는 "사실 오리건 주에서는 지난해처럼 지독히 추웠던 경우를 제외하곤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
당분을 첨가하는 일은 거의 없다. 지난 11년간 단 한 차례의 당분 첨가가 있었다.
하지만 당분이 와인의 구조감과
우아함을 향상시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분 첨가에 대한 제한이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데는 많은 와인 제조자가 동의한다.
알코올 도수를 당분 첨가에 의해 지나치게 높이는 것은 오히려 와인의 균형미를 깨뜨릴수 있다는 주장이다.
부르고뉴 지역 도멘 드 몽틸의 드 몽틸은 "당분 첨가로 1%이상 알코올 도수를 높이면
균형미가 심각하게 손상된다"고 강조했다.
샴페인 하우스 샤르토뉴 텔레의 필립 샤르토뉴도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경우 기후가 워낙 변덕스러워
2%까지 허용되지만, 지나치면 와인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다며" 당분첨가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와인 전문가도 여러가지 이유로 지나친 당분 첨가에 대해서는 경계한다.
프랑스 알자스 지역 휘겔앤필스(Hugel & Fils) 와이너리의 에티엔 휘겔은 때론 당분 첨가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지난겨울지나친 당분 첨가로 프랑스 보졸레 지역의 많은 와이너리가 고발당한 적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게다가 일부 지역에선 여전히 최고급 오인에 당분 첨가를 금하는 제도가 시행 중이다.
독일 프라디카츠바인(Pradikatswein.최고급와인)이나 오스트리아 최상급 와인에는 당분 첨가가 금지돼있다.

많은 전문가는 와인 제조기술이 발달하고 지구 온난화가 계속되면 설탕을 넣는 일이 필요치않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벌써부터 미국 캘리포니아 주나 이탈리아 등 상대적으로 더운 지역이나 일부 유럽 지역에선 이미
산성화(acidification. 와인에 타르타르산을 추가함으로써 신맛을 보충하는 행위)가 당분 첨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있다.

기후 변화와 와인 제조기술의 발달로 '설탕과의 전쟁'과 유사한 현상들이 속속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와인'이냐, '맛있는 와인'이냐. 여러가지 입장과 이견들이 난무하고 있는 가운데
와인 애호가들은 현명한 결정이 내려지길 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