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의 여름은 유달리도 별난 것이 많았다. 가뭄에, 폭우에, 태풍에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기상 현상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기상 전문가들의 말에 의하면 2012년 여름 북극의 얼음 크기가 사상 최소가 되었다는데, 이 덕분에 공기가 차가워져서 2012년 겨울에는 북반구에 대단한 혹한이 다가올 것이라 한다. 올해의 경우에도 폭우나 태풍이 강하게 오는 것은 과거에는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서로 어느 정도의 세력 균형을 잡고 있고 그 온도가 극단적이지 않았다면, 올해는 찬 공기도 강하고 더운 공기도 강하여 서로의 충돌이 강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올해는 두 공기의 차이가 극명하여 여름이 길고 겨울이 빨리 오며 가을이 짧을 것이라 한다.

가을을 좋아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슬픈 소식이지만, 가을은 포도원들이 한국을 많이 찾는 시기일 뿐만 아니라, 보졸레 누보를 위시하여 새로운 수확의 기쁨을 맛보는 시기다. 그리고 가을은 모두가 아는 “남자의 계절”아니던가? 트렌치 코트 하나 어깨에 짊어매고, 고독을 씹는 남자의 모습은 오로지 남자만이 느낄 수 있는 로망 아닌 로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여성들이 볼 때에 꼴불견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로망도 없이 남자들이 품고 있는 마초의 추억은 어디에서 반추할 것인가?

가을은 언제나 수확의 계절이지만 또한 겨울로 넘어가는 한 템포를 찍는 전환점과 같다. 마음은 알게 모르게 애잔하게 되며, 자신도 모르게 나만의 와인을 찾게 된다. 가을에는 톡톡 튀는 산미감도 좋지만, 약간의 유질감과 보디감이 있는 고급 와인을 찾게 되는 경향이 있다. 가을에는 또한 전어와 같은 제철 음식들도 나오지만 오곡이 모두 다 새롭게 수확이 되니 무엇을 먹는다 한들 훌륭한 맛을 선사한다. 그러면 가을 와인 즐기기를 살짝 살펴보자.(물론 나의 주관적 의견이니 절대적이라 생각 말자.)

가을 전어에는 뉴질랜드 화이트로: 전어는 뼈 채로 썰어서(흔히 세꼬시라 한다) 먹는 것이 제 맛을 준다. 작은 생선일수록 뼈가 부드럽기 때문에 그 통째로 먹는 것이 훨씬 좋은 맛을 선사한다. 서울에서는 구이로도 많이 먹는다. 가을 전어는 몸에 좋고 귀한 것이라 남편도 안주고 사위 준다 했다. 남편들이여 슬퍼하지는 말자. 그래도 친구들끼리 모여 소주 한 잔에 회포는 풀 자리가 있지 않던가? 단연코 가을 전어에는 뉴질랜드 화이트를 꼽을 수 있다. 소비뇽 블랑을 생각하겠지만 나는 피노 그리를 1번, 그 다음으로 소비뇽 블랑, 다음으로는 리슬링을 꼽는다. 뉴질랜드산이다. 최근 뉴질랜드는 탈 소비뇽 블랑 추세를 크게 보여주고 있다. 칠레의 저가 고품질 소비뇽 블랑(비오비오 밸리 등)이 시장에서 뉴질랜드 와인의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관점에서 뉴질랜드는 새로운 대안으로 피노 그리, 리슬링 등 새로운 품종으로 눈을 돌리고 있으며 최근 그 성과는 눈에 보일 정도로 띄고 있다. 피노 그리와 가을 전어는 훌륭한 조화력을 보여줄 것이다.

대하 및 꽃게: 사실 대하는 자연산 대하가 최고지만 멸종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개 양식장에서 키워진 새우를 적절히 쪄서 먹는 것이 우리네 대하 먹기다. 꽃게 역시 아주 기름기가 많고 향이 강렬하다. 어지간한 와인들은 이 대하와 꽃게와 같은 갑각류의 강한 향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 이럴 때에는 어김없이 힘 좋으며 적절한 단 맛을 내포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산 샤르도네를 꼽을 수 있다. 적절한 단 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뒤에 전달되는 약간 쌉싸름한 오크 느낌, 그리고 샤르도네 특유의 균질감이 마시는 이로 하여금 놀라운 절제감을 전달해준다. 새우나 꽃게에는 의외로 몽바지악 지역 혹은 쥐랑송 지역의 스윗 와인들도 훌륭한 조화력을 보여준다. 다만 많이 마시기 보다는 중간의 터치 정도로 볼 수 있다. 섬세한 부르고뉴의 샤르도네나 뉴질랜드, 호주의 크리스피한 샤르도네는 약간의 충돌이 날 수도 있으니, 오히려 캘리포니아 지역의 힘 있는 샤르도네로 그 기세를 누르는 것이 좋다.

자연 송이: 한 조각만 먹어도 입 안을 온전히 적셔준다. 자연 송이는 그 자체만으로 완벽한 식재료라 할 수 있다. 올해의 송이 작황은 9월이 되어 비가 내리는 추세, 그리고 기온을 보아야 하겠지만, 2010년과 같은 대풍작을 얻기는 어렵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 해 본다. 송이를 쭉쭉 찢어서 토염에 살짝 찍어 먹어도 훌륭하며, 얇게 썰어 불에 구워 먹고, 그 것에 약간의 질 좋은 채끝살과 같은 소고기 부위를 함께 겯들이면 1년에 한 조각만 먹어도 무릉도원이 없다. 이 느낌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송이는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꼭 먹어보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 송이는 자체의 깊이감이 워낙이 강렬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와인은 이 고급스런 아로마를 따를 수 없고 유일한 대안은 빌라쥐급 이상의 부르고뉴 피노 누아르 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러나 한-EU FTA 이후 국내에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의 가격이 많이 내려가고 있으니, 이 부분에 집중하면 좋을 것이다. 뉴질랜드의 피노 누아르나 미국 오리건주의 피노 누아르는 보디감이 높고 산미가 낮아서 송이와는 완벽하지 않을 듯 싶다. 비용 부담은 있겠지만 용기 내어 한 번 선택 해보자.

와인은 추천하지 않는다. 이 기준으로 장터에 나가보면 내가 생각하는 예산에 적절한 와인들이 즐비하다. 그 와인 하나 골라서 슴슴하니 요리와 함께 즐기자. 와인잔이든 맥주잔이든 소주잔이든 그 것에 살짝 따라서 “캬” 하는 감탄사 한 글자 섞어 와인 한 모금 들이키자. 인생이 무엇 있겠는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 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 그 고생을 하는 것을. 여기에 좋은 벗이 함께 한다면 무릉도원이 더 없으리라.


출처 : 와인21, 와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