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각만큼 청각이 꽤나 예민해서 주변의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빛에도 민감하지만, 특히 청각에 민감하다. 밤에 잘 때에는 컴퓨터도 모두 다 끄고 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방은 철저하게 검어야 하며, 나를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은 빛의 공해, 소리의 공해가 과도하다.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주변에 소리는 새 소리, 바람 소리,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 내거나 악기가 만들어내는 흘러가는 소리 밖에 없었다. 소리를 기록하고 멀리 전달하게 된 100년 전, 그리고 인간이 자동차라는 수단을 만들어서 엔진의 덜덜거림의 소리 이전에는 오로지 자연의 소리만 존재했다. 그러니 그 당시에 사람이 만들어 내거나 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얼마나 사치스러운 순간의 즐거움이었겠는가? 빛 역시 그러하다. 낮에는 빛이 존재하고, 밤에는 어둠이 존재한다. 밝음이 곧 어둠이기에 현동(玄同)이고 명동(明同)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주변에는 인위적인 빛이 너무 많다. TV, 핸드폰, 그리고 핸드폰의 진동 등등...

주변의 빛이 없고 소리가 없다는 것은 외부의 자극에서 완전히 단절됨을 뜻하고, 외부와 단절됨은 잠시간의 죽음 상태를 맞는 것을 뜻한다는 셈이다. 생과 사가 둘이 아니기에, 잠시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는,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것이다. 충분히 숙면을 취하고 일어나면 기분이 좋은 이유는, 이처럼 죽음 뒤에 맞이하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일 준비를 몸이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고 어두운 곳에서 충분히 자고 밝은 빛과 자연의 소리를 대하는 것은 우리 일상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그에 반해 오늘날 우리는 인위성에 의해 너무나 많은 자연스러움을 방해받고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 나는 아들의 학습 수업을 위해 성북동을 간다. 주로 버스를 이용하지만, 때론 택시를 이용할 때도 있다. 택시를 타면 몸은 편안하다. 그러나 마음은 불편할　때가 간혹 있다. 이는 기사의 에너지에서 기인한다. 오늘 아침도 그러했다. 기사의 인성이 문제가 아니라, 길의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고, 그 것을 바꾸거나, 나의 시각에 맞지 않는 것을 나에게 맞추어 조절하려는 의지 때문이었다. 도로 상황이 마음대로 되지 않자 기사의 운전은 거칠어지고 호흡은 식식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저 앞에 저렇게 차를 세워두면 어쩌란 말이야...”

“...허허, 행사 있다고 길을 막아두었네. 행사 안내라면 저기 앞에 안내판을 둬야 하는 것...”

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마음에 나쁜 에너지를 밭았다는 것 보다는, 그 성급하고 조급한 에너지를 같은 공간에서 공유하고 20~30분을 온다는 것 자체가 마음의 불편함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이런 느낌은 와인을 대할 때에도 종종 느껴지기 마련이다. 흔히 나는 조미료를 탄 와인이라는 이야기를 주변 지인과 나누는 경우가 있다. 와인의 맛에 있어서 인공미가 가미되는 것인데, 조미료라 함은 오크칩을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효모에서 오는 경우도 많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여러 양조 기법이 도입되고 있고,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으면서도 저렴한 와인을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높은 당도를 자랑하는 포도들을 드라이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부득이 높은 알코올 도수에서도 살아남는 특수한 효모를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떠나서, 와인이 생산되는 과정에서 우리의 테이블에 온 다음 우리가 마시는 모든 행동에 인위성이라는 요소가 매우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한 편으로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포도 껍질에 붙은 자연 효모만을 강조하는 포도원, 말린 포도에서 즙을 짠 다음, 이를 다시 십년 넘게 숙성하고 줄어든 와인은 하나로 다시 모아 응집된 빈 산토(Vin Santo)와 같은 포도주처럼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그리고 순리를 그대로 받아들여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야기 하는 와인들도 많다. 그러나 아닌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그러나 좀 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던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 견해로써 사실 어린 와인을 깨운다는 미명 하에 거칠게 디켄터에서 흔들어주거나, 과도한 에어레이션을 해주는 보조도구를 쓰는 것은 가급적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실 시기가 된 와인을 마시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해야 한다. 본디 그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기 위해, 순리에 따르기 위해 개별적 노력을 해야 할 정도로 우리 일상은 인위성에 물들어 버렸다. 과거에는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면 자연히 소음은 없고, 빛은 호롱불 하나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빛이 없으려면 창문에 큰 커튼을 쳐서 바깥 빛을 없애고, 방에는 침대 하나 두고, 침대 스탠드만 하나 두어야 한다. 뭔가 인위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정도로 우리의 주변은 많이 치우쳐져 있고, 너무 가득 차 있다 못해 흘러넘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몇일 내 머릿속에는 이 “순리대로 두는 것의 중요성”이라는 문구가 떠나지 않는다. 화두 마냥 내 머리를 계속 두드리듯, 울림이 일어나고 있다. 과연 “순리”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중요하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둔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이 것 자체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순리에 역행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이것을 해석해야 하는가? 순리를 따르기 위해 인위성을 다시 따라야 하는가?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데 있어 순리를 따르는 것, 일을 하는데 있어 순리를 따르는 것, 주변 환경을 만드는데 있어 순리를 따르는 것, 그리고 와인을 마시는데 있어 순리를 따르는 것, 무엇 하나 속 시원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 오랫동안 내 마음의 화두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출처:와인21.com - '와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