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메인 로고


제목 Wine과 취기
날짜 14/05/12
글쓴이 Wine4Love

프랑스의 요리전문가이자 작가인 알랭 쉬프르(Alain Schifres)는 그의 저서 (‘즐거움을 주는 음식의 사랑스러운 사전’ 정도로 번역 가능)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신뢰할만한 연구에 따르면 와인이 여러 질병을 예방해준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행운을 지녔다. 나는 심장을 위해 첫 잔을 마시고, 암을 막기 위해 두 번째 잔을 마신다. 세 번째 잔은 건강한 내 몸을 위해 마신다. 그리고 그 다음은 기쁨을 위해 마신다.” 
여기서 방점은 기쁨에 찍어야 한다. 이 기쁨은 분명 취기를 동반한 기쁨일 테다. 괴테(Goethe)는 “와인은 인간에게 기쁨을 주고, 기쁨은 모든 미덕의 근원”이라 했고, 페니실린을 발명한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은 “페니실린은 인간의 병을 고치지만, 인간에게 진정 기쁨을 주는 것은 와인뿐”이라고 했다. 와인과 기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하여 나는 “와인은 기쁨의 나눔이고, 나눔의 기쁨”으로 정의한다.

문제는 기쁨을 표현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라는 데 있다. 특히 취기로 인한 기쁨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고도 다양하다. 디오니소스적인 광기에서부터 스르르 눈을 감는 침묵형 스타일까지. 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로 인한 사건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자고로 술이란 마시면 취하고, 취하면 객기가 발동해 혀가 널뛰기 시작한다. 마시고, 취하고, 읊고… 일종의 트릴로지(trilogy)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들에게 취기는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보들레르가 멋들어지게 표현했듯 소위 “창조적 취기”로 화려한 변신을 하기도 한다. 술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수많은 예술가들은 존재하지 못했거나 전혀 다른 작품을 탄생시켰을 수도 있다는 상상이 가능하다.

프랑스의 작가 라블레(Rablais, 1494-1553)는 “마시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속성”이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프랑스의 시인 니콜라 브왈로(Nicolas Boileau, 1636-1711)는 “마실 줄 모르는 인간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또 다른 작가 앙뚜완 블롱댕(Antoine Blondin, 1922-1991)은 “나는 술을 마시는 작가가 아니라, 글을 쓰는 술꾼”이라며 스스로를 재미있게 정의했다. 중국의 이태백이나 한국의 천상병, 김수영 등과 같은 작가들에게 술이 없었다면, 과연 그들의 일상과 작품은 어땠을지 자못 궁금하다. 그들도 술을 즐기는 시인이 아니라, 시를 쓰는 술꾼에 가까웠을까?

잠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고 넘어가자. 이태백이 마셨던 술의 대부분은 와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이태백의 부친은 페르시아계라고 한다. 현재의 서안(Xian)인 당시 당나라의 수도 장안에는 요즘 말로 와인바가 즐비했는데, 이곳에서는 페르시아 복장을 한 서구풍의 여인들이 서빙을 했다고 한다. 당시 장안이 실크 로드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을 알면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황제와 세상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봐주지 않은 것에 대한 답답함과 울분을 삭이기 위해, 이태백은 와인바의 문턱이 닳을 정도로 드나들었단다. 가장 큰 고객이자, 가장 크게 외상을 하는 썩 반갑지만은 않은 단골이었던 것이다. 술에 관한 이태백의 수많은 시 중에는 고량주나 독주가 아니라 와인이 주는 취감으로 쓰여진 것들도 있다는 가정이 성립된다면, 그의 시에 대한 느낌이나 해석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술이란 여럿이 같이 마실 경우가 흔하지만, 취할 땐 각자 홀로 취한다. 비록 같이 마신다 해도, 각자의 주량, 성향, 술버릇, 그날의 컨디션 등에 따라 따로 취하는 것이다. 나 홀로의 길, 그것이 취기의 길이다.



출처:와인21닷컴>뉴스News>칼럼



최종수정일 : 2014/05/12 Mon 12:45:13
EZBoard by EZNE.NET / Rovinia♡Dr'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