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전자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국민학교때다(지금 세대는 좀 생소한 용어일지 모르겠다). 당시 독일출신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음악을 형이 즐겨 들었는데, 이들의 전자음악 앨범인 라디오악티비티(Radioactivity)가 나온 연도는 1975년도다. 이 당시 프랑스에서도 위대한 음악가가 출현했는데, 방송에서도 많이 등장하던 전자음악가인 장 미쉘 쟈르(Jean Michel Jarre)다. 그는 76년 산소(Oxygene)라는 앨범을 발표하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80년대 TV 세대를 살았던 나로서는 이 음악들이 호기심과 함께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90년대에도 전자음악을 즐겨 들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음악가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종종 충격을 받을 때가 있는데, 2000년대 들어서 최고를 꼽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아르민 판 뷔런(Armin Van Buuren)을 들 것이다. 그가 태어난 연도는 1976년이다. 앞서 전자음악의 창시자 장 미쉘 쟈르는 아직도 현역 아티스트고, 크라프트베르크 역시 현역이며, 아르민 판 뷔런 역시 현역이다.
 
전자음악은 사람의 목소리나 악기를 다루는 것이 아니어서 아티스트의 나이가 들었다고 한들 리듬이 바뀌거나 실력이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성숙되고 깊이 있는 사운드를 뿜어낸다. 최근까지도 장 미쉘 자르가 타임머신이란 앨범을 2015년 발표했고, 이 앨범의 기획의 핵심은 젊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에 있다. 여러 아티스트가 있으나 내가 이 앨범에서 최고로 꼽는 협업은 바로 장 미셸 자르와 아르민 판 뷔런의 협업이며, 곡명은 스타더스트(stardust)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지만, 나는 처음 들을 때 온 몸에 전기가 돋았으며, 두 아티스트의 전형적인 리듬이 너무나도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음을 느꼈다. 마치 좋은 와인의 마리아주를 느낄 때처럼 말이다.
 
음악생활 40년이 훌쩍 넘은 이 노구의 아티스트는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고도 훌륭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나는 그 기저가 깨어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깨어있음, 스스로를 인식하고 늘 변화를 갈구하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새로운 젊은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하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와인에도 이런 깨어 있는 와인을 살펴본다면, 나는 장기 숙성형 와인을 꼽고 싶다. 장기 숙성형 와인은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모습을 계속 변화하며 보여준다. 젊을 때에는 많이 숨겨둔 느낌을 주기도 하고, 숙성이 될 때에는 정말로 화사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며, 숙성이 완료된 이후에는 중후하고도 멋진, 인생을 통달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흔히 좋은 와인을 경륜이 있는 연주자에 빗대기도 한다. 이 역시 경륜이라는 것이 단순히 오래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무쌍하게 새로움을 추구한 결과(연주법 등)를 추구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무던한 연습과 자기 수양이 높은 경지를 보여주듯, 포도에 대한 집중, 오랜 경험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찾아 헤매는 포도원의 열정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열정적 연주자는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인다. 열정적 양조자 역시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인다. 보편적으로 깨어있고 열정적인 이들이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 이는 깨어있음이 곧 젊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우리가 와인을 테이스팅 하는 과정도 깨어있음과 젊음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분명한 것은, 깨어있는 와인은 젊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올빈 와인을 테이스팅 할 때 많이 살필 수 있다. 우리는 올빈 와인을 테이스팅 할 때 우선 ‘살아있는가’를 먼저 살핀다. 이 ‘살아있음’의 정의는 제각각이기는 하나 적어도 산도와 아로마의 힘, 그 균형감에서 와인이 살아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깨어있는 모습과 젊음은 단지 기계적인 평가만으로는 해소되지 않은 깊은 심연이 있다고 생각된다. 아직도 2006년 당시 테이스팅한 1986년산 레오빌 라스카스(당시 20년 된)의 너무 젊어 도저히 열리지 않던 모습이 생생하다. 이 와인을 올빈이라 해야 할까 영빈이라 해야 할까? 나는 이 와인이 그만큼 변화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어 깨어있는 와인이었으며, 그 시점에도 젊음을 유지했던 것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깨어있음은 과도하게 화려하지도, 과도하게 숨지도 않는, 적절한 중도의 길을 걸었기에 그 모습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불꽃같이 짧은 시간 변화를 과하게 드러냈으면 소멸도 빨랐을 것이다. 변화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깨어있을 시간도 없었을 터이니,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스스로 늘 변화하는 와인이야 말로 깨어있음이고, 그 깨어있는 와인이야 말로 젊고 역동에 넘치는 와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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