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

메인 로고


제목 배추김치, 한국 와인
날짜 18/01/10
글쓴이 W.4.L

식문화는 기후와 지형, 그리고 역사가 함께 만드는 문화다. 예부터 사람들은 쉽게 재배하고 사냥할 수 있는 식재료를 선택해 식탁에 올렸고,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교류하며 조리법을 공유했다. 그 자체로 지역적 특색을 가지면서 시대의 흐름도 반영하는 것이 바로 식문화다. 한국을 한(恨)이 많은 나라라 하는데, 바람 잘 날 없던 역사 속에서 우리의 식문화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현재 우리가 즐기는 한식은 자의든 타의든, 다양한 식재료가 섞이며 여러 가지 새로운 맛이 혼합된 스타일로 변화해왔다.

그러나 이런 복합적인 맛이 있는 한식이 와인에는 선뜻 자리를 내주지 않은 듯하다. 우리나라에서 ‘마리아주’라는 단어는 아직 어색하다. 정찬식 상차림에선 맛의 변주가 끊임없이 일어나며, 김치와 국물이 충분히 와인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음식이 단순할수록 다양한 와인이 맛의 재미를 더 더할 수 있지만, 좋은 품질의 기준이 되는 세련되고 단단한 산미와 그윽한 타닌의 구조감은 한식의 정찬식 상차림에선 역날검처럼 우리의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그래서 가벼운 로제 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을 한식에 가장 적절한 와인으로 보는 와인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그런데 과연 한국 음식과 한국 와인의 마리아주를 말할 때, 와인을 단지 ‘보완’이라는 한 가지 역할로 규정할 수 있을까? 서로 어우러지며 새로운 맛이 생긴다거나, 와인과 음식이 서로의 맛을 돋우며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기는 경우 등을 확인하고 싶었다. 직접 경험해보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 와인21닷컴은 한국 와인 전문 소믈리에인 광명시의 최정욱 주무관을 초청해, 와인 전문가 및 와인 애호가들과 함께 한국 음식과 한국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시간을 가졌다. 

캠벨 얼리(Campbell Early), 산머루(V.Amurensis), 거봉(Kyoho Grape), 머스캣 베일리 A(Muscat Bailey A) 등은 우리나라 기후에서 잘 자라는 포도 품종이다. 그리고 오미자, 감, 무화과, 다래, 비파, 귤, 사과, 복숭아 등 포도를 제외한 다양한 원재료를 사용한 와인. 즉 과실 와인이라고 불리는 이색적인 와인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청수, 청향, 청포랑을 포함해 최근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우리 고유 품종의 와인 역시 큰 기대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와인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음식과 어떤 궁합을 보일까?

나물 반찬

나물은 한식에서 가장 기본적인 반찬이다. 신선하고 상쾌하면서도 참기름과 들기름의 고소함, 그리고 씁쓸한 여운도 느껴진다는 점에서 서양의 샐러드와 큰 차이가 있다. 특히 고춧가루가 살짝 첨가된 나물에선 약간의 알싸함도 느낄 수 있다. ‘오미로제 프리미어’ 와인 처럼 오미자, 감, 비파 등으로 만든 과실 와인의 경우 와인의 싱그러움과 산뜻함이 살아있다. 동시에 원재료 고유의 풍미도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나물 종류의 반찬과 즐길 때 최상의 선택이 된다.

초밥

회나 숙회 등 해산물을 아예 익히지 않고 먹거나 살짝 데쳐 먹는 아시아의 식문화를 다른 나라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중에서 초밥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다. 해산물 요리가 더 발달한 일본에서는 코슈(Koshu), 샤르도네 품종과 같이 산미가 뛰어나고 잔잔한 향이 뒷받침되는 여성스러운 화이트 와인을 일식에 매칭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번에는 그 역할을 ‘감그린 레귤러 화이트’ 등의 과실 와인 및 로제 와인이 담당했다. 당도가 있는 한국 화이트 와인의 경우, 여운에서 강하게 남는 꿀 뉘앙스가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드라이한 청수 와인은 좋은 궁합을 보인다는 의견이 많이 나왔다.

치킨 및 각종 튀김

전통적인 한식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야식으로 가장 사랑받는 음식은 단연 피자와 치킨이다. 한국 와인이 충분한 대중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이처럼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음식과 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시음에서 놀라웠던 점은 한국 화이트 와인과 튀김류의 매칭이었다. 본래 기름기가 너무 강한 음식은 쉽게 질릴 수 있지만, ‘그랑 꼬또 청수 화이트’와 같은 화이트 와인은 와인의 좋은 산미가 입맛을 돋우고, 잘 익은 감귤류와 핵과류, 아로마틱한 잔향이 매력적인 소스의 역할까지 대신해 뛰어난 궁합을 보였다.   

육류 요리

한식에서 육류는 오래전부터 나눔과 분배의 대상이었다. 조리하기 전, 먹을 수 있는 크기로 미리 손질하고 간장, 고추장을 이용해 양념하거나 얇게 썰어서 한 조각씩 구워 먹는 바비큐 형태로 즐겼다. 서양의 스테이크와는 다른 점이 많다. 우선 질감부터 그렇다. 스테이크가 입안 가득히 진한 고기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면, 한식의 육류는 강한 양념이 팬프라이(Pan Frying) 방식으로 입혀지거나 고기를 그대로 구워 먹을 경우엔 장에 찍어 먹는다. ‘예인화원의 남산애 드라이’ 와인과 같이 산머루 또는 캘뱀 얼리로 만든 레드 와인은 그 풍미가 좋으나 구조감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양념이 된 육류와 같이 먹으니 서로 상호 보완하며 매력적인 궁합을 보였다. 이날 전반적으로, 특정 와인과 음식은 좋은 궁합을 보였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웠던 점은 대부분의 한국 와인이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렸다는 것이다.   

와인 애호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에 여행을 갈 때마다 부러워하면서도 놀라곤 하는 사실은 바로 자국 와인의 내수시장 소비율이 높다는 점이다. 국제 와인 박람회 빈엑스포(Vinexpo)의 연차 보고서도 이점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수입 와인의 뛰어난 품질을 잘 알고 있지만, 식문화의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자국 와인을 일상 속 식문화에 지속적으로 접목하는 것이다. 이렇듯 적당한 산미와 당도를 지닌 한국 와인은 우리나라의 정찬식 상차림이 만드는 복합적인 맛에 잘 어울리는 와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한국은 약 5000년의 유구한 역사가 있지만 우리가 현재 즐기고 있는 결구형 배추김치의 형태는 그 역사가 100여 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날 김치가 한식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는 배경은 그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김치의 알싸함과 상쾌함이 여러 한식과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주류 생산에 쓰이는 양곡을 포도로 대체하기 위해 흉내 내기식으로 와인을 만들었던 과거와 다르게, 본격적으로 높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100여 개 이상의 한국 와이너리가 와인을 선보이기 시작한 지 이제 갓 10년이 지났다. 이제는 1세대가 2세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다. 지금 우리가 소비자로서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은 전형적인 기준을 들이대지 않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 와인이 우리 밥상에 자연스레 오를 수 있게 만드는 첫 번째 발판이 되지 않을까.


출처:와인21닷컴>뉴스News>칼럼



최종수정일 : 2018/01/10 Wed 11:13:03
EZBoard by EZNE.NET / Rovinia♡Dr'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