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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와인을 공부하는 것과 시음하는 것은 다르다
날짜 20/02/11
글쓴이 W.4.L

와인만큼 복합학문이 없다. 그리고 분업이 애매하게 되어 있는 산업 분야도 흔하지 않다. 자동차의 예를 들면 사업분야가 명확하다. 엔진 부문, 조향 부문, 브레이크 등 안전 부문, 전장 부문, 의자 및 도어트림, 프레임 등등 그 기술 분야가 명확하다. 농업의 경우에도 생산 수확 후에는 도매상에서 경매에 붙여지고 큰 마트나 숍에서 판매된다. 유통 단계가 명징하다는 것이다. 농민 직거래가 있지만 크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생산지의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청양고추라는 이름은 자주 들었지만 청양의 어떤 테루아 때문인지, 어떤 품종이 들어갔는지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와인이라는 것은 단순한 자연의 산물에 인간의 노력이 약간 덧붙여져 만들어진다는, 철학적인 관점까지 덧붙여진 연속이었다. 19세기 파스퇴르의 미생물에 대한 발견, 그 이후 서서히 시작된 포도주 양조에 대한 이해, 그리고 20세가 들어 에밀 페노 교수의 노력에 의해 꽃피게 된 양조학은 21세기 들어서도 급격하게 발달하고 있다. 그리고 양조학은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컨설팅은 일반적인 영역이 되었고 많은 유명한 컨설턴트가 포도원들을 누빈다. 훌륭한 컨설턴트는 와인 품질을 극도로 개선시켜주기도 하지만 맛을 엇비슷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기에는 철저하게 과학이 작용한다.

내추럴 와인이라 하더라도 여기에는 철저한 과학이 따르지 않으면 모든 것을 이룩 할 수 없다. 순수한 이스트와 자연적 산물만이 나오게 하려면 철저한 청결, 주변 환경에 대한 엄격한 통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염된 물질들이 와인을 해치게 될 것이다. 양조 과정에 있어서 온도, 어디에서 발효할 것인지, 효모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확인하는 과정, 그리고 사이에 일어나는 일련의 화학반응을 관찰하는 것은 오로지 과학이다.

와인을 공부한다는 것은 이러한 부분, 즉 과학의 세계를 알아간다는 것이다. 지리학도 공부해야 하며, 농업도 공부해야 하고, 화학도 공부해야 한다. 물론 효모 같은 이스트에 대한 공부도 함께 해야 한다. 하나만 하는 것도 매우 버거운 것인데 와인만큼 복합적인 학문이 없다. 이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도 나와서는 여러 포도원을 다니면서 본인의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일종의 이력서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와인과 관련된 업에 종사하다가 용기를 갖고 해외로 나가서 직접적으로 와인을 공부하고 생산현장을 누비면서 그 기초를 닦은 몇몇 와인업계 전문가들에 대해서는 모두 다 그들의 노고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실력과 결과물들은 앞으로 우리 앞에 하나 둘 씩 나타나게 될 것이다.

반면 시음은 전혀 다른 세계다. 와인 시음의 세계는 이 결과물에 대한 관능적, 철학적 평가 단계다. 여기에는 양조학의 지식이 약간 필요할 수 있으나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상당부분 주관적 판단에 따른다. 가급적 객관성을 띠기 위해서 여러 평가 기준을 나누어두고 있으나, 부케, 아로마, 색, 맛, 피니시에 따른 구분 조차도 그 사이의 선을 긋기가 어렵다. 맛과 아로마는 연결되어 있으며, 부케는 아로마 이전의 그 무엇인가다. 피니시 역시 남은 맛, 남은 아로마에 따라 반응하는 인간의 반응이다. 인간이 측정도구가 되는데 이 과정은 아무리 객관적이려 해도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될 수 없으며 수치화가 불가능하다.

과학은 실험과 관찰로 만들어져 완벽하게 수치화가 되는 세계인 반면, 시음은 그렇지 않다. 이 두 이질적인 세상이 모두 다존재하고 있고, 그 것으로 가격이 결정되는 세계가 와인이다. 그만큼 분야별로 경계도 모호하고, 여러 종류의 종사자들이 있으나, 그 바운더리가 매우 좁다. 와인 전문가들이 이야기 할 때 “해외 전시회 가면 와인 세계가 매우 좁다”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바로 이런 상반된 영역에 대한 지식 구조를 모두 다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와인 생산자들은 이 두 가지 영역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모두 다 갖고 있다. 뛰어난 생산자, 양조자들은 이 두 상반된 영역, 즉 비과학의 영역과 과학의 영역 사이에서 적절한 줄다리기, 그리고 자신의 철학과 소비자의 심리를 영리하게 파악하여 좋은 와인을 만들어내는 것일 것이다. 와인만큼 소비자들에게 이러한 두 영역에 대한 지식을 강요하는 주종도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와인이 다른 술들에 비해서 많이 보급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유럽은 본디 생활이 와인에서 출발했기에 큰 거부감이 없겠으나, 아시아권이나 미국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좋은 소비자가 되려면 저 두 가지가 다름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간혹 양조에 대해서 매우 많이 아는 것처럼, 테루아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이들이 있다. 사실 나는 전문적인 와인 지식을 칼럼에 많이 쓰지 않는데, 과학의 영역에서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나보다 월등하게 많은 지식을 가진 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시음의 입장에서도 나보다 훨씬 객관적 지표에 냉정함을 잃지 않는 이들이 많다. 실수는 언제나 구분없이 내 마음대로 떠들어댈 때 발생하고 무례함도 여기서 나올 것이다. 와인을 공부하는 이들에 대한 존중, 그리고 소비자 개개인의 시음에 따라 발생하는 주관성에 대한 존중은 와인 시장을 더욱 키워주고 공고하게 하며, 진지한 소비자, 즐거운 소비자 모두가 늘어나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출처:와인21닷컴>뉴스News>칼럼



최종수정일 : 2020/02/11 Tue 15: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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