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만큼 어떤 잔에 담기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맛과 향이 예민하게 바뀌는 술도 드물다. 맛과 향과 색을 즐기기 위해 종류에 따라 다른 잔이 추천될 정도다. 레드 와인은 화이트 와인보다 큰 잔에, 또 기포가 있는 와인은 길쭉한 잔에 따라야 제 맛이 난다는 것이다. 이뿐인가. 잔을 닦는 법도 일반 식기세척법과 다르다.

보르도 와인아카데미 김미경 교육팀장은 "와인은 향을 즐기는 술이므로 와인잔을 닦을 때는 세제를 사용하면 안 된다"라고 조언했다. 잔에 세제 냄새가 밸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세제를 써서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닦아버리면 표면이 지나치게 매끄러워져서 와인 특유의 '눈물'(와인이 잔 안쪽으로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현상)을 볼 수 없게 된다는 설명이다.

비법은 물과 스팀을 이용하는 것. 우선 따뜻한 물에 담가 깨끗이 닦는다. 싱크대 안에 타월을 깔아두고 닦으면 혹 닦는 과정에서 잔이 미끄러지더라도 쉽게 깨지지 않는다. 잔을 따뜻한 물로 헹군 다음엔 깨끗한 면 천 위에 뒤집어 놓는다. 물기가 어느 정도 제거되면 끓는 물 위에서 생기는 스팀을 잔 안쪽으로 쐬어주고, 면 천으로 잔 받침부터 먼저 닦는다. 다음엔 한 손으로 잔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잔 안을 고루 닦는다. 이때 절대 잔 받침과 잔을 비틀어 짜듯 힘을 줘서는 안 된다. 또 천 대신 키친타월을 사용해도 안 된다.

보관도 잘해야 한다. 다른 그릇처럼 찬장 속에 뒤집어 넣어두면 찬장 특유의 냄새가 배므로 금물이다. 또 똑바로 세워두면 먼지가 쌓이게 마련이므로 자주 사용하지 않을 경우엔 사용 전 다시 한번 물과 스팀으로 닦아줘야 한다. 제일 좋기는 와인잔을 거꾸로 매달아 두는 전용 걸이를 마련하는 것. 와인의 향과 맛을 제대로 즐기기는 이만큼 까다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