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은 한 손으로 따른다고?
유럽을 비롯한 세계 와인이 우리 나라에 수입된 지도 십여 년 이상 되었으며, 이제는 웬만한 와인상식도 많이 퍼졌습니다. 그런데 와인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먼저 와인이란 어떤 술인지 알려는 노력보다는 와인 매너가 와인지식의 전부인 양 생각하고, 와인 마시는 법에 대해서 까다롭게 구는 사람도 많습니다. 보통 와인에 대한 지식이라면, 언뜻 와인 잔을 잡을 때는 어떻게 잡고, 따를 때는 어떻게 하는 식의 와인매너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 와인 매너는 와인지식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때와 장소에 따라서 그 기준이 바뀌기 때문에 기본적인 상식 선에서 상대에게 실례가 안 되는 범위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면 됩니다.

"잔은 반드시 아래쪽 가지부분을 잡아야 하며, 먼저 색깔을 보고, 향을 맡고, 음미하듯이 마신다. 그리고 서빙할 때는 한 손으로 따르며, 받는 사람은 아무런 동작을 하지 않아도 된다." 대체적으로 이런 식을 와인 마시는 법이라고들 얘기합니다. 어쩌다 우리 식으로 두 손으로 와인을 따르면 좀 안다는 사람은 "와인은 한 손으로 따르는 것이다"라고 얘기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매너는 서양의 관습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윗사람에게 와인을 따를 때는 우리 식으로 두 손으로 정중하게 따르는 것이 예의입니다. 외국 나가서 외국 사람에게 따를 때는 한 손으로 따르는 것이 그 쪽의 예법이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의 예법을 따르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또 외국인과 와인을 마실 때 두 손으로 따른다고 해도 실례되는 행동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좋아할지도 모릅니다.

서양 사람들은 모든 음료, 더 나아가 모든 물건을 나이가 많건 적건 한 손으로 주고받습니다. 맥주, 주스, 그리고 물을 비롯한 모든 음료를 전부 한 손으로 따릅니다. 그러니까 와인도 한 손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와인을 받을 때도 어려운 분이 따라 준다면 당연히 두 손으로 받아야 옳습니다. 그러나 웨이터가 따라준다면 그대로 가만히 앉아서 받고 고맙다는 말이나 눈인사 정도 하면 됩니다. 또 더 이상 마시고 싶지 않을 때는 잔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거부 의사를 표현하는 정도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 때 유행하던 원두커피가 요즈음은 시들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는 역시 달콤한 자판기 커피가 맞는 모양입니다. 이 자판기 커피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우리 나라 고유의 커피가 되었습니다. 커피가 진하지만 달기 때문에 맛이 좋고 피로를 푸는데 그만입니다. 또 크림이 많아서 위장 장애도 별로 없습니다. 서양의 커피가 우리 나라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한 것입니다. 와인도 우리 식으로 자리를 잡을 것입니다. 와인을 식사 때 음식과 함께 하면 좋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소주나 위스키 대신 우리 식으로 와인을 마시는 습관이 생길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예의란 언제, 어디서든지 상대방을 기분 좋게 배려해 주는 것입니다. 아무리 엄한 예법이라 하더라도 상대가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에티켓이 아닙니다. 그리고 몸에 벤 바르고 깔끔한 매너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좋은 와인이나 음식이 나왔을 때는 그 맛과 향을 감상하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며,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해박한 지식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 정도면 국제화시대 최고의 사교수단으로서 와인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매너를 갖추기 위해서는 매너보다는 와인의 속성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