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과거의 집들이 풍경. 각자 휴지 한 보따리 혹은 세제(洗劑) 한 봉지씩 사 들고 마치 전투라도 치르러 가듯 몸도 마음도 비장한 마음으로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세제거품처럼 잘 번창해라’, ‘휴지처럼 잘 풀려라’ 하는 의미도 무색하게 한 구석에 세제와 휴지를 늘어놓고는 막바로 신혼부부의 신고식으로 들어간다. 음식 타박부터 시작해서 끊임없는 원샷! 빡빡 피워댄 담배에 여기저기 널린 술병들이 어지럽다.

자 그럼 이제 최근의 집들이 풍경을 보자. 먼저 주종은 와인. 와인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술이기에 지나치게 취해 추태를 부리는 것이 어느 정도 방지되기도 하며, 때로는 경건한 의미까지 곁들여져 집들이 술자리를 더욱 의미있게 만들어준다. 여기에 음식에 맞춰 식전주(食前酒)와 식중주(食中酒), 식후주(食後酒)로 나누어 어느 정도 구색을 맞춰주면 분위기는 점점 살아난다. 보통 주방에서 음식 만드느라 정작 안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던 아내도 와인과 간단한 안주가 있으면 가뿐한 마음으로 함께 자리에 동참할 수 있다.

아예 집들이를 와인파티라고 공지하는 경우도 많다. 풍경은 자못 달라진다. 주최자는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들을 준비하고, 초대되는 사람들도 저마다 자신들이 즐기는 와인을 한두 병씩 들고 한 자리에 모인다. 그들은 각자 준비한 와인들을 함께 맛보며 자신이 그 와인을 좋아하게 된 이야기로 자리를 화기애애하게 꽃피운다. 깨끗한 뒷마무리로 후유증 없는 다음날은 초대된 손님들에게도 훌륭한 인상으로 남는다. 집들이에 들고 가는 와인은 단 한 병일지 몰라도, 거기에 들어있는 마음은 이같이 풍부해질 수 있다.

미디엄 스위트한 와인 한두 병 정도와 레드 와인 한 병, 여기에 크래커, 카나페 치즈까지 챙긴다면 그다지 부담도 없으면서 확실한 생색이 나는 집들이 선물이 될 것이다. 추천와인으로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서 나오는 ‘로제타(Rosetta) 와인’. 자연스런 체리빛이 감도는 와인으로 차게 해서 마시면 좋으며 다양한 종류의 디저트와 잘 어울린다. 호주 로즈마운트의 스파클링 와인인 ‘브이(V)’는 그 멋진 라벨로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엷은 짚색에 감귤, 복숭아의 신선한 향, 그리고 생생한 거품과 뛰어난 구조감을 가진 와인이다. 또한 라벨에 두 손으로 포도를 받치고 있는 그림이 들어있는 호주산(産) 레드와인 ‘투 핸즈 에인절스 셰어(Two Hands Angel’s Share)’ 역시 새로운 앞길의 축복의 의미를 충분히 전할 수 있는 와인이다.

이른바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이 있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우리는 내 인생이 조금씩 업그레이드되기를 원한다. 그 시작을 축하하고 앞으로의 업그레이드를 기원하는 자리를 여전히 과거의 추태로 채우는 ‘간 큰 손님들’이 아직도 있을까. 이제 샴페인이나 와인으로 시작해보자. 코르크 마개를 오픈하는 그 소리가 마치 출발선상에 선 마라톤 주자의 귓전에 울리는 출발신호처럼 경쾌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