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나라 포도로 만든 와인이 꽤 나오고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겨울이 춥고 여름이 습하여 포도의 당도가 낮다. 유럽의 와인용 포도의 당도가 20-25 %인데 비해서 우리 포도는 12-15 % 정도밖에 안 된다. 당도에 0.57을 곱하면 발효 후 대략적인 알코올 농도가 되니까, 우리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알코올이 7-8 % 정도 된다. 알코올 농도가 11-13 % 정도 되려면 당도가 20-24 %는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설탕을 넣어 당도를 20-24 %로 올린 다음에 발효를 해야 한다.

물론, 유럽이라고 설탕을 전혀 첨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역에 따라서 어느 정도 허용량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 같이 많은 양의 설탕을 넣지는 않는다. 천연적으로 당도 높은 포도를 사용해서 발효시킨 와인과 설탕을 첨가하여 발효시킨 와인의 맛은 다를 게 뻔하다. 게다가 우리나라 땅값은 너무 비싸서 포도 값도 만만찮다. 그러니까 더 맛없고, 비싼 와인이 될 수밖에 없으며, 행여 와인을 잘 만들어 유럽 와인과 질이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같은 값이면 유럽 것을 선택하니까 잘 팔리지도 않는다.

열악한 조건에서 역사가 십년도 안 되는 국산 와인과 외국산 와인의 경쟁은 처음부터 될 수가 없다. 차라리 포기하고 틈새시장을 노려야 한다. 생산지의 특성을 살려서, 그 지역 음식과 그 와인이 잘 어울린다는 공식을 만들어서 홍보하거나, 그 지역 관광지나 축제와 와인을 묶어서 홍보하여 그 지역의 와인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히 그 지방자치단체의 홍보에 묻어갈 수도 있고, 나중에는 자치단체나 투자자의 자금을 끌어들여 그림 같은 집을 지어놓고 와이너리 견학과 시음, 숙박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렇게 그 지방의 명품으로 알려진 다음에 서울의 큰 매장에 진출하는 단계를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 !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포도와 양조용 포도는 수박과 호박이 다르듯이 종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포도로 만든 와인과 양조용 포도로 만든 와인은 맛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두 가지를 놓고 맛의 우열을 비교할 수는 없다. 그 동안 우리나라 와인은 전혀 다른 포도로 외국산 와인의 맛을 흉내 내고 따라가려고 애를 쓰다가 실패한 것이다. 우리만이 나타낼 수 있는 독특한 와인을 만들면 된다. 

좋은 와인이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경험을 쌓아야 제대로 된 와인이 나온다.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웠다고 당장 맛있는 김치를 담글 수 없듯이 좋은 와인이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의 이익을 접어두고 장기간 우리 와인을 위해 투자를 과감하게 할 수 있는 장기적인 안목과 철학을 가진 투자자와 우리 실정에 맞는 와인을 만들겠다는 뚜렷한 의지가 있는 와인 메이커가 만나야 우리 와인의 장래를 보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