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리는 회식자리에 몇달 전 선물 받은 와인을 가져갔다가 낭패만 봤다.
코르크 마개를 열자 코를 찌르는 강한 냄새 때문에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30만원이 넘는 비싼 와인이라고 동료에게 자랑까지 해놨는데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버릴 수밖에 없었다.
금방 마실 것이란 생각에 보관을 안이하게 한 것이 원인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더워진 날씨에 장마로 습도까지 높아졌지만
그냥 사무실에 방치한 게 화근이었다.

풍부한 포도향에 향긋한 맛이 혀를 감싸고 도는 것이 좋은 와인의 매력이다.
그러나 이처럼 여름철 보관에 방심하면 와인은 곧 무색무취의 밋밋한 음료로
변하고 조금 더 지나면 진한 식초로 돌변한다.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나
고무 타는 냄새로 불쾌함만 더하는 경우도 있다.


와인은 예민한 음료다. 온도와 습도, 빛 등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해
변화를 일으킨다. 특히 고온다습한 우리나라의 여름 환경에선 보관에
자신이 없다면 와인 구매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할 정도로 ‘사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와인 보관 온도는 12~16도가 가장 좋고, 습도는 75~95%가 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와인셀러가 있다면 이런 고민을 덜겠지만 와인셀러가
없다면 김치냉장고를 활용하거나 지하실, 다용도실 등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보관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영심 아영FBC 마케팅 본부장은 “와인셀러가 없는 경우 화이트 와인이나
로제 와인은 냉장고에 잠깐 보관해도 괜찮다”며 “시원하게 유지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일정 온도를 적정하게 유지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급격한 온도의 변화는 와인에 스트레스를 주어 맛을 쉽게 상하게하기 때문이다.


김치냉장고는 칸이 분리되어 있어 음식물과 섞이지 않고, 일반 냉장고에 비해
온도 조절이 쉬워 와인셀러와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다.
일반 냉장고에 둔다면 다른 위치에 비해 온도가 높고 냉장고 문을 열고 닫아도
온도에 영향을 안 받는 야채칸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냉장고에 보관할 때는 젖은 수건을 바닥에 깔아 수분을 유지하고 냉장고 모터의
진동으로부터 완충 역할을 하게 한다.


냉장 보관도 힘들다면 빛이 들지 않으며 적당한 습도가 유지되는 지하실을
택한다. 그러나 아파트라면 빛이 잘 들지 않는 북향의 다용도실에 신문지를
두껍게 깔고 와인을 뉘어 놓는다.


조상덕 금양인터내셔날의 차장은 “먹다 남은 와인의 경우에는 진공 펌프를
이용해 산소를 빼낸 후 코르크로 다시 막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용량이 작은 병에다 옮겨 보관하면 3일 정도 맛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잘못 보관된 와인은 묵은 코르크 냄새가 강하고 석유나
에탄올, 비릿한 냄새 등을 풍기므로 아까워하지 말고 바로 버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