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하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신의 선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도 그러하다. 그러나 와인이 인간의 가장 순수한 감성을 건드리는 만큼, 와인은 인간의 정치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정치사상을 만들어내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도 와인이 사용된다.

공산주의를 만들어낸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Karl Marx)나 엥겔스는 대단한 와인 광이었다고 한다. 심지어 마르크스는 “와인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믿을 때는 조심하라”는 명언을 남겼다고도 할 정도다. 그는 심각한 와인 애호가에 애연가였는데, 그가 독일에 살았던 만큼 특히 모젤(Mosel) 지역 와인을 좋아했다. 그는 18세기 모젤 지역의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엄청난 노동 착취를 겪고 있는 것을 보았고, 프러시안정부의 과도한 세금 및 착취 구조를 목격하였다. 이것이 실질적으로 마르크스가 혁명(revolution)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내고, 새로운 정치사상을 만들어낸 실마리가 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마르크스는 엥겔스를 따라 영국에 3년 정도 머물렀는데, 여러 정치사상에 대한 토론이 와인과 함께 했을 것이라는 것은 엥겔스와 마르크스가 정치 사상가였다는 것에 있어서 추측이 어렵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가 더 있다. 오늘날 와인업계에 있어서 자동 와인 수확기는 대량 생산을 위해서 필수적인 장비중의 하나다. 그러나 이 장비 역시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1960년대 초반 이 기계장치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개발되었을 때, 캘리포니아의 주요 와인 수확은 멕시코인 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기계가 발명되자 잠시 시간을 내어 일을 하는 멕시코 노동자들에게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이에 체 게바라(Che Guevara)는 노동조합을 만들어 이들이 새로운 기계를 도입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이 기계는 몇 년 동안 방치된다. 1960년대 중반 호주의 와인 생산자들이 미국의 이 기계를 보고는 호주로 가져갔다. 노동력이 부족한 호주에서는 이 기계가 쉽게 안착될 수 있었고, 이는 호주 와인이 오늘날 세계 시장에 잘 자리 잡도록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는 프랑스 보르도 그랑 크뤼 1등급 와인중 하나인 샤토 무통 로쉴드의 1945년 빈티지는 오늘날에도 전설의 빈티지로 추앙받고 있다. 1945년 하면 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해다. 우리에게는 8월 15일이 종전이라 생각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1945년 4월 히틀러가 자살하면서 종전되었다. 물론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전황은 연합국으로 기울어 파리나 보르도 같은 곳에서는 전후 복구 작업이 계속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 있어서 1945년의 빈티지는 치유의 해에 만들어진 와인이며, 그래서 그들은 레이블에 종전의 기쁨을 담아 두어 레이블에 “Annee de la victoire(승리의 해)”가 기재되어 있다. 와인은 감성적인 존재며, 그 뿌듯한 감정의 에너지가 레이블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셈이다.

2006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독도와 관련된 언급을 하였다. “독도는 한국 땅입니다”하고 국가 통수권자가 언급한 것이다. 이에 감명 받은 분들이 뜻을 모아 독도 와이너리라는 곳을 설립하였다. 레이블에는 독도의 우편번호인 799-805가 새겨져 있으며, 와인을 담은 상자에는 독도의 위치를 새긴 그림이 정확하게 그려져 있다. 와인이란 단순히 하나의 맛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문화재이자 정치적인 의사를 전달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이 포도원에 열정을 가졌던 안재현 박사는 지난 3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에너지는 앞으로도 계속 이 와인에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의 힘이 보태어질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2012년 G20정상회의에 나온 건배주는 오미자 스파클링이라는 독특한 와인이 제공되었다. 한국내 주류 양조에 있어 최고로 꼽히는 이종기 교수가 해외 정상들의 만찬 건배주에 제대로 내세울만한 주류가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프랑스 에페르네를 수십 회 방문해가며 몇 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와인이 오미자 와인이다. 2010년 겨울 당시 나는 그의 문경 연구실을 찾았고, 그 때 그의 말에 에너지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노력의 결과 2012년 G20 정상회의에서 그 와인은 비로소 빛을 발했다. 와인의 판매 관점을 떠나서 와인이라는 것은 한 국가를 대표하고, 나아가 문화를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임을 극적으로 설명한 예라 할 수 있다.

2006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영국 국빈 방문 시 영국 왕실은 샤토 그뤼오 라루즈(Gruaud Larose) 1985년산을 내었다. 샤토 그뤼오 라루즈의 레이블에는 유명한 문구가 쓰여져 있는데, “왕의 와인, 와인의 왕(Le Vin des Rois, Le Roi des Vins)”. 즉, 와인은 정치와 상당히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국빈을 대접하는데 있어서 만찬장에 “왕이 오셨소!”하는 것 보다, 이 와인의 레이블에 담긴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 보다 세련되고도 훌륭한 정치적 의미(당신을 이렇게 대접하고 있습니다)를 띤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종교가 정치와 분리되어야 하는가? 이는 이미 유럽에서 증빙되었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와인과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가장 순수한 정신적 이상을 가진 존재가 가장 세속적인 영역과 일맥상통한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그러나 우리는 지금 와인을 마시면서 수십 개의 정치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수십 개의 관계를 조망하고 있다. 와인이야 말로 가장 완벽한 정치의 파트너인 셈이다. 정치도, 세속의 삶도, 인간의 열정도, 감정도, 모든 것이 와인 하나 안에 녹아날 수 있으니, 와인이란 이 얼마나 경이로운 존재인가?



정휘웅 블로거


출처:와인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