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와인을 입문자들에게 강의할 때 레이블 설명은 빼지 않는다. 그리고 그 때 간단한 규칙을 설명한다. "우선 뭔가 작은 글씨가 알아볼 수 없게 나열되어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큰 글씨중 하나는 생산지 이름입니다." 물론 100%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부분이 부르고뉴 와인의 경우에는 거의 맞아떨어지고, 이탈리아의 경우에도 상당히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과 칠레, 호주와인들의 지역 세분화에 대한 노력이 상당히 가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자동차로 우리나라를 여행할 때, 땅을 자주 본다. 서울 시내에 버스를 타고 다닐 때에도 공사장을 보면 포클레인이 깊이 판 땅의 색을 본다. 그러면 서울 시내에서도 강북과 강남의 흙 색상이 상당히 다르며, 사면의 모양에 따라서 매우 더운 위치와 따뜻한 위치, 상대적으로 건조한 느낌이 나는 곳이 있다는 것이다. 풍수적인 개념을 도입하기 이전에, 땅의 모양과 흙의 느낌이 우리가 한 걸음 가기에 따라서 이처럼 다양한데, 온 국토를 다 따져 본다면 얼마나 다양한 느낌이 날 것인지는 유추하여 결론 내려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의 남도는 오래된 퇴적층이 많으며 그래서 공룡 화석도 많이 나온다. 그 곳 근처에 있는 경남 사천은 내 선산이 있는 곳이라 자주 땅을 보는데, 잘 바스러지는 얇은 퇴적층이 융기한 땅이다. 그 땅은 배수가 좋으며 건조하기 때문에 작물을 경작하지 않는다. 여기의 땅은 경남 고성처럼 진흙과 같은 지질로 인해 단단한 바위와 화석이 잘 남는 지형이 아니라, 모래 같은 지형인 셈이다. 이처럼 테루아는 여러 가지 세부적인 주변 환경의 차이점으로 완성된다. (고성과 사천 사이의 거리는 불과 30~40km 남짓이다.)

땅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의 원류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죽으면 땅으로 돌아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나 땅을 구성하는 원자가 모두 제한된 개수의 원자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인간의 몸이 다섯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는다. 흙, 물, 에너지, 공기, 에테르라는 것이다.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우리의 몸은 탄소를 기반으로 한 유기 화합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석유도 탄소 화합물이다. 탄소가 빠지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으며, 철(Fe)이 없으면 우리의 피는 산소를 공급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별은 우리에게 생명과 원소를 만들어내었으며, 그 것이 응집되어 생명이 탄생했다.(물론 신께서 창조하셨는지 아닌지, 나는 잘 모른다.) 중요한 것은 과학적 관점에서 지구의 구성 물질이나 우리네 몸의 구성 물질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에게 가장 아쉬운 와인 생산지역이 하나 있는데 바로 키안티(Chianti)다. 키안티 지역의 전체 면적은 정확한 통계 자료는 없으나 피렌체에서 시에나에 이르는 직선거리가 약 50km에 이르니 이를 바탕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한국의 서울은 동서 약 36km, 남북으로 약 30km 수준에 이르니, 대략 우리나라의 수도권(분당 용인을 아우르는) 정도로 보면 생각이 수월할 것 같다. 간단하게 생각 해 본다면, 서울 땅 안에서도 강북에는 비가 오고 강남에는 햇볕이 나는데, 저 넓은 지역의 기후와 토양이 모두 동일할까? 경기도 파주의 온도가 영하 10도라고 해서 서울 강남의 온도가 영하 10도일까? 필자의 경험으로는 적어도 기온 차이가 5도 가량 난다. 그래서 키안티 지역에는 키안티의 큰 범주 외에도, 키안티, 키안티 클라시코(Chianti Classico), 키안티 루피나(Chianti Rufina), 키안티 콜리 세네시(Chianti Colli Senesi), 키안티 콜리 아렌티니(Colli Arentini), 키안티 콜리 피사네(Colli Pisane), 키안티 콜리 피오렌티니(Colli Fiorentini) 등 여러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키안티 하나만의 테루아로 이야기 하면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격이기 때문이다.

테루아의 세분화는 부르고뉴가 가장 잘 되어 있고 정교하게 되어 있다. 그 덕분에 와인의 가격은 높아졌지만, 각 지역별로 분명하게 드러나는 품질의 차이뿐만 아니라 맛의 차이를 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와인을 마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나는 늘 이야기하기를 지리를 꼽는다. 땅에서 난 것이 와인인데, 땅에 대한 이해 없이는 와인을 바로 이해할 수 없다. 와인은 우리에게 그 땅을 전달하는 매개체중 하나다. 따라서 그 땅을 가보면 정말로 쉽게 와인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땅에서 와인을 시음하면 그 땅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와인 초심자들에게는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나는 와인 생산지에 대한 분석에 따라서 산지를 좀 더 세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기후가 세분화 되어 있듯, 우리가 몸을 붙이고, 언젠가 돌아가게 될 땅에 대한 존경이 남아 있다면, 그 땅을 좀 더 세분화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와인을 그냥 즐기는 것도 와인의 큰 기쁨이다. 나도 와인 시음노트를 쓰지 않고 단순히 즐기는 날도 많이 있다. 그리고 전문적으로 시음하고 평가해야 하는 날도 있다. 그러나 늘 시음하면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테루아를 세분화 할수록 땅의 기운이 정확하게 드러난다. 땅이란 수 천 만 년에 걸쳐 천천히 융기하고 움직이기에, 그 속에 내재된 에너지는 땅의 에너지다. 세분화 될 수밖에 없다.

땅에 대해 이해하자. 그 것은 와인에 대한 이해가 아닌, 나에 대한 이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출처:와인 21